김사인의 시시한 다방을 듣다가, 문득 시라는 것이 다시 읽고 싶어서 서점에서 몇 권을 집어들어 사서 돌아왔다. 분명, 나는 학교다닐 때 윤동주, 김소월, 김수영, 백석, 정지용, 서정주, 박목월 등의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으며, 내가 산 시집 중 한 두 편 정도는 그런 감동을 나에게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몇 편을 소리내어 읽어본 이후 나는 그런 기대를 대부분 접었다(어떤 시집인지를 알려주면 더 좋겠지만,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최근 발간된 시집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정도의 지성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대부분 시는 공감은 커녕, 다 읽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편 두편 세편을 읽어도 똑같았다. 지금은 사용조차 하지 않는 생뚱한 단어들은 기본이며, 다 읽어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무엇을 떠올리라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먹고 살기 힘들어 시적 감수성이 바닥난 것인가? 어쩌면 가장 쉬운 비판은 나를 향하는 것이다. 가슴이 메말라서, 시적 감수성이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는 문득 내가 왜 시를 읽지 않게 되었는지를 떠올렸다. 스물 몇살 즈음에 같은 이유로 시집을 몇 권 샀다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왜 나는 돈주고 시집을 사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한탄하다가 시를 읽기 그만두었던 것이었다. 거의 데자뷰같은 이 현상을 보면서, 문제가 나뿐만 아니라 어떤 시인들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직해지자. 이건 궁극적으로 한국문학, 그리고 문학판의 문제라고 판단됐다. '이상한 시'를 양산하는 한국의 문학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이상한 시들의 난립을 이상한 시들의 난립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아무도 벌거숭이 임금님을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못 하는 격이다.
어쩌면 시인들이 다 굶도록 시집 몇 권 사지 않은 나의 잘못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장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뺏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에 비하면, 내가 읽었던 시들은 너무 안온한 자기만의 폐쇄적인 세계에 빠져있었다. 신기한 게 한결같이 그랬다. 게다가 평론가들의 평론은 더 어렵다.
한 나라의 한 문학 장르를, 특정한 작품을 언급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비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나는 좀 슬픈 생각이 들었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문학장르였던 '시'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글들로 가득차있는 이상한 장르가 되어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시인들이 힘든 시대이긴 하다. 나는 오히려 거꾸로가 진실이 아닌가 싶다. 시가 시시해져서 시시한 대접을 받는건 아닐까 싶다.
설마 시가 이렇게 된 것이 이름도 비슷한 시~~인자유주의 때문은 아닐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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