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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화, 책상, 휴대폰의 공통점. (스압주의)
노동의 산물, 누군가는 이것들을 만들어야만 한다.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서 생각해봤다.
가장 재밌는 것이 뭘까.
만드는 거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일은 없다.
다 끝났을 때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이런 기쁨을 느끼기 위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책상을 만들고,
휴대폰을 만든다.
아니,
만들다보면 만드는 사람만 느끼는 특별한 기쁨을 느낀다.
기쁨은 사후적이다.
그런데 이 기쁨은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을 만든 신이 있다면,
인간이 신을 닮아서가 아닌가 싶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는
태양과,
지구와,
산소와,
숨쉬는 단백질 덩어리인 생명체,
급기야
자기를 닮은 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신의 모사품이었을 것이다.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복제하는 행위이다.
영화는 자기 머릿 속의 상상을 현실에 복제하는 행위,
아마 워쇼스키 남매가 매트릭스를 만든 것처럼,
신도 자신을 보면서 인간을 빚었을 것이다.
확률적으로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은 완전할 수 있을까?
돌덩어리에 불과한 지구에
적절한 정도의 중력과,
적절한 농도의 산소와,
적절한 수준의 물과,
적절한 수준의 화석연료를 주입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수 차례, 아니 수만 차례, 아니 수조 차례의
오류와 고치기를 통해서 가능했을 것이다.
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면,
그는 전지전능한 무엇이기보다,
집요한 인내심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신은,
자신의 모사품을 만들기 위해 아마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쳤을 것이다.
별을 만들고,
인력의 법칙으로 행성을 돌리고,
생물체가 타 죽지 않을 정도로,
또 생물체가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사랑하다가 죽어서
썩어서,
다시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태어날 수 있을 땅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그는
수차례 실험을 거쳤을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은 아마도
신이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다 실패한 흔적일 지 모른다.
신을 닮은 인간은,
또 무엇을 만들면서 흥미를 느낀다.
만듦의 가장 기본적 요소는
아이디어와 물질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말하는 이데아(idea)가 설계도라면,
질량을 가진 물질은 이데아를 실현하는 도구이다.
인간의 노동과,
꿀벌의 노동이 다르다고 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바로 이런 점을 착안한다.
말하자면,
꿀벌은 살려고 만든다.
인간은 이데아를 모방한다.
인간이 이데아를 모방한다는 속성은
마르크스에 의해서 극복되었다기 보다는
강화되었다.
자,
신의 존재를 제거하고 설명해보자.
어쩌다보니,
저 별들과,
하늘과,
물과,
바람과,
미생물과,
인간이 만들어졌다.
어쩌다보니,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생겨났고,
이 모든 것이
어쩌다보니 생겨났다.
그런 인간은
어쩌다보니
자연만물이 생긴 것과 똑같은 원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만듦을 좋아한다는 변태적 특성으로
지구상의 문명을 건설했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다리를 놓고,
빌딩을 놓고,
자동차를 만든다.
신이 없으면 인간의 존재는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수 많은 별들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는다.
매트릭스는 묻고 있다.
왜 너는 거기에 있느냐?
네가 여기 온 목적은 무엇이냐?
목적을 찾는 자는 결국
신을 찾게 되어 있다.
그 신은 전지전능한 초능력자이기 보다는
아주 부지런하고 포기를 모르는,
집요한,
인간을 닮은,
만드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
어떤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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